American warship, ca. 1854

가와라반

 

     가와라반은 근세 초기에는 ‘스리모노[摺りもの]’, ‘요미우리[讀賣]’ 등으로 불렸는데, 화재나 지진 등의 재해 정보나 희귀한 사건 등, 주로 시사적인 내용을 기사로 실어 싼값에 판매한, 1장 또는 2~3장을 한데 묶은 목판인쇄물이다. 

    가와라반의 효시는 겐나[元和] 원년(1615) 오사카 여름 전투 때 발행된 「대판묘년지도(大坂卯年之圖)」라고 한다. 1680년대에 화재가 난 곳이나 자살사건을 다룬 가와라반이 많이 발행되었고, 이후 낙서나 니시키에[錦繪, 목판 우키요에]와 함께 도시부의 미디어로서 정착되어 갔다. 페리 내항 당시의 출판물에는 검열제도가 있었는데, 가와라반은 발행허가를 받지 않는 위법출판물로 빈번하게 금지령이 내렸다. 그러나 페리가 내항할 무렵에 이러한 위법출판에 대한 형벌은 주로 벌금형으로, 가와라반을 발행하는 측에는 발각되는 경우에도 벌금만 지불하면 된다는 심산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증기선

 

    증기선도에 그려진 굴뚝과 연기는 매우 크며, 검은 연기를 뿜어내고 있는 것도 있다. 굴뚝과 연기가 강조되어 있어, 당시의 에도 서민들에게 증기선은 네덜란드 선박에 바퀴가 붙어 있고 연기를 뿜 어내는 선박으로 인식되었음을 짐작 할 수 있다

     두 번째 페리 내항 때에는 이 증기선의 이미지가 크게 달라 졌다. <그림 2 외륜선·흑선도(外輪船·黑船圖, 가칭)>를 보자. 길게 날씬해 진 선체는 실제의 배 모양과 비슷한 것 같지만, 그림 1과 비교해서 크게 다른 점은 형체의 차이보다도 화면에서 느끼는 스피드감이다. 시커먼 선체 주위에는 부서지는 파도가 묘사되어 있고, 덮개가 있는 외륜도 물거품을 일으키고 있다. 굴뚝에서 나온 자욱한 검은 연기는 뒤쪽으로 길게 뻗치고 있고, 성조기인 듯한 깃발을 줄지어 달아 놓은 로프는 후방으로 호를 그리고 있다. 이는 증기선이 질주하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인데, 주목해야 할 것은 모든 돛이 접혀 있는 상태라는 점이다. 그림 1은 돛이 후방에서 부는 바람을 받아서 앞으로 나아가는 범선의 그림인데, 깃발은 뱃머리 쪽으로 휘날리고 있다. 반대로 그림 2에서는 깃발과 연기는 후방으로 날리고, 돛은 펼치지 않고 바람을 가르며 질주하는 배의 그림이 묘사되어 있다.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 등에 묘사 된 페리 함대의 선박은 돛을 펼친 상태로 그려져 있고, 특히 증기로 달 린다는 점을 그리지 않은 것과 비교해 보면, 그림 2의 증기선도는 돛을 펼치지 않고, 즉 바람의 방향에 좌우되지 않고 고속으로 질주하는 배로서, 증기선의 기능면을 그림으로 강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면 윗 부분에는 “1시간에 30리, 1주야에 360리를 달린다. 비바람과 거친 파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달릴 때는 마치 용이 대해를 건너는 것 같다” 는 기술도 보인다.

 

 

미국인

 

    중국적이라는 인상을 낳고 있는 가장 큰 요소는 모발과 눈의 묘사법이다. 털은 길고 곱슬곱슬하지 않은 검은 색으로 표현되어 있다. 머리는 후두부 위쪽에서 묶어 세 발 비녀로 고정시키고 있다. 눈썹은 굵고 다소 쳐진 듯한 인상이다. 수염은 수북하지만 입가를 덮을 정도는 아니다. 눈은 아몬드 모양의 눈초리가 치켜 올라간 눈이며 쌍꺼풀이 있고 눈꼬리와 눈밑에는 주름이 그려져 있다. 이와 같은 눈언저리와 수염의 표현은 공자상과 관우상 등 낯익은 중국인상의 형체 중의 하나였다.

    사카모토 미쓰루[坂本滿]는, 예로부터 일본의 최대 관심의 대상이었던 외국은 중국이므로 일본 화가들은 중국에 관해 많은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었고, 그 때문에 달리 의거할 데가 없는 경우, 예컨대 보지도 못한 남만인의 국가나 풍속을 그릴 때, 화가들이 중국적인 정경으로 표현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고 하고 있다. 坂本滿(1977), 『日本の美術·南蠻屛風』, 至文堂

    당시 이국인상은 나가사키에뿐만 아니라 미세모노[見世物], 제례행렬, 접시, 담배쌈지 끈에 다는 세공품과 같은 공예품에도 묘사되어 있 다. 또 가부키나 이국이야기를 다룬 읽을거리도 많았다. 명나라의 부흥 을 도모하는 국성야화등내(國姓爺和藤內), 류큐로 건너간 진제이하치로 다메토모[鎭西八郞爲朝], 에조에서 송나라로 건너간 요시쓰네[義經], 난쟁이 섬 으로 건너가는 아사히나[朝比奈] 등 이국이야기가 인기를 얻었으며, 페리 내항 무렵에는 이국인물도를 게재한 세계지도가 다수 발행되었다. 그러나 미국인의 경우, 페리 내항 7년 전인 고카[弘化] 3년 비틀의 내항 이 미국을 의식하는 첫 기회이며, 그만큼 일본인에게 알려져 있던 이국은 아니었다. 18세기 말부터 종종 내항해 온 러시아인의 모습은 네덜란 드인을 바탕으로 나가사키에에 그려진 몇 가지 그림이 남아 있다. 페리 일행의 인물상도 나가사키에에 바탕을 두었다면 네덜란드인과 비슷한 인물상이 되었어야 한다. 그러나 흑선가와라반의 미국인상은 나가사키에의 네덜란드인이나 러시아인과는 다른 모습이다. 나가사키에의 표현에서는 네덜란드인과 러시아인의 머리가 말아올린 머리로 그려져 있으며 수염은 그리지 않은 것이 많으나, 페리 일행의 초상에는 곱슬곱슬한 머리와 수염이 그려져 있다. 또 네덜란드인과 러시아인상은 머리나 복장이 하얘 전체적으로 하얀 인상을 주는 데 비해, 미국인의 경우 머리 나 옷도 검은색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게 표현되었다. 복장도 네덜란드 인이나 러시아인상과는 다른 군복 차림으로 그려져 있다. 가와라반의 화가가 중국인·조선인·네덜란드인·러시아인과 같이 이미 알고 있던 이국인과 다른 초상을 만들려고 시도했음을 알 수 있다. 배의 경우도 돛을 접고 질주하는 증기선상이 만들어졌다. 흑선가와라반은 새로 운 미국 선박상·인물상을 통해 서민들에게 미국과 종전에 알고 있던 이국을 구별하여 인식시킴과 동시에 그 차이에 대한 인식을 확대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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