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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만 25세의 학부생 로버트 고다드는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 한 획기적인 논문을 발표한다.

 

 

 

 

당시엔 기능성 자이로스코프 개발에 대한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바로 비행기에 자이로스코프를 활용하여 균형을 잡는 방법에 대한 논문이었다.

 

 

 

자이로스코프는 훗날 로켓의 균형을 잡기 위해서도 이용될 터였다.

 

 

 

그 무렵부터 고다드는 우주 항해 연구에 대한 몽상을 하기 시작한다. 대부분이 거의 불가능해보이는 몽상이었다. 

 

 

 

"내 안에 무언가 작업을 멈추지 않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고 당시의 그는 기록했다. 

 

 

 

'원심력, 전파, 자기 반응, 태양 에너지, 원자 에너지... 그리고 화학 추진... 이온 추진이 계속해서 나아간다면...실험에 따르면 역시 고체연료는 가능성이 없는 것인가.'

 

 

 

고다드는 우스터에서 학사학위를 딴 뒤, 1909년에 클라크 대학원에 입학한다. 

 

 

그곳에서도 고다드의 우주에 대한 열망은 식지 않았다.

 

 

여가 시간에도 사비를 털고 짬을 내서 액체 추진체에 대한 연구와 실험을 거듭했고,

 

 

로켓에 대한 방정식도 공부하던 그는 1912년, 프린스턴에서

 

 

 

또 다른 로켓 개척자, 러시아의 치올로코프스키가 10년전에 만들어냈던 로켓 방정식을 독자적으로 개발하기도 했는데,

 

 

 

이는 중력과 항력 또한 고려했다는 점에 있어서 전보다 진일보한 것이었다. 

 

 

 

 

 

***

 

 

 

 

"로켓 대부분이 추진 물질로 이루어져 있고... 가스가 로켓에서 노즐을 통해 빠르게 빠져나올수만 있다면... 초기 질량은 아주 조금만 있어도 되는거야. 문제는..."

로버트 고다드는 중얼거리며 글을 휘갈겼다.

 

 

 

"로버트, 이쯤되면 순순히 인정하는 게 좋을거야. 솔직히 달나라 여행하는 게 꿈인거잖아?"

 

 

 

"하지만 당연히 여기서도 뉴턴의 법칙을 따르겠지...작용반작용의 법칙을...총과 화약과 같은 원리로...가스는 로켓의 추력이 되는거야. 우주공간이라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거지..."

 

 

 

"밥먹을 때까지 공상에 빠진 과학자군."

 

 

"하늘에 로켓을 띄우는 건, 말도 안될만큼 실용적인 이점이 있어. 관측 로켓은 대기를 면밀히 조사할 수 있을 것이고, 이건...농사 짓는데도 도움이 되겠지."

 

 

"듣고 있었어? 너가 언제부터 농업에 관심이 생긴거야? 너가 로켓, 라디오 말고 관심 갖는 분야가 또 있었나? 그럼, 그 관측 로켓을 만든 그 다음엔? 라디오 사업하게?"

 

 

"온도, 그리고 풍속을 조사하고...내 메모에 손대지마. 흩어져서 하나라도 사라지면..."

 

 

"조금만 보여줘 봐, 내가 도움이 될 수도 있잖아?"

 

 

"솔직히, 내가 생각하기에 너는 로켓 연구에 적합하지 않아. 로켓 연구에 적합하기 위해선 다방면에서 골고루 특출나야하니까."

 

 

"그렇게 다방면에 특출났지만 허약해서 기침만 하는 사람이 픽 죽어버리면 인류의 우주개발은 누가 책임지지?"

 

 

"전장이 하늘로 옮겨질 거라더군."

고다드는 특유의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뭐?"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개발한건 비행기에 총을...손대지 말라고!"

 

 

 

 

***

 

 

 

1913년, 로버트 고다드는 심한 결핵에 걸려 생사의 고비를 넘나든다. 

 

 

의사들은 그에게 시한부 인생을 선고했다.

 

 

의사에 충고에 따라, 고다드는 고향 메사추세츠의 공기좋은 우스터에서 긴 요양생활을 시작한다.

 

 

"우스터의 공기는 역시 좋네요."

 

 

"고다드 씨, 침대에서 이런게 발견됐습니다."

간호사는 얼굴을 찡그리며 메모지를 흔들었다.

 

 

"아, 그건 제자리에 돌려놓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정말 열심히 연구하고 있는 주제에 대한 것이에요."

고다드는 그렇게 말하고 간호사의 눈치를 살폈다.

 

 

"..."

 

 

"알았어요. 그만할게요. 그치만 일단 그 메모지는 주세요. 네. 저도 압니다. 아직 한참 남은 주제입니다."

 

 

"..."

 

 

"그 일을 하려면 일단 살아야하니까요. 알겠어요."

 

 

 

 

***

 

 

1914년, 로버트 고다드는 기적적으로 건강이 호전되었다. 같은 해 고다드는 두가지 특허를 출원했는데, 

 

 

고체연료를 주입한 다단 로켓과 

 

 

가솔린, 액체이산화질소와 같은 액체추진연료를 기반으로 한 로켓에 대한 것이었다. 

 

 

 

 

(화학추진기)

 

 

이 두 특허는 로켓 역사에 있어서 훗날 이정표 역할을 하게 된다.

 

 

 

 

 

1914년 이후 클라크 대학의 강사 겸 연구원이 된 고다드는 훨씬 더 여유롭게 연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첫번째 로켓 실험을 준비했다.

 

 

1915년의 어느날, 수업이 끝난 직후 고다드의 로켓이 발사되었고 발사의 소음은 꿀잠자던 관리인을 깨울 정도로 컸다.

 

 

이 소동으로 인해 그는 한바탕 자신의 연구가 무해하다는 것을 해명해야 했으며, 사실상 연구실로 유배되어 거기에서 연구를 지속하게 된다.

 

 

고다드는 로켓에 드라발 노즐(convergent-divergent nozzle수렴-팽창 노즐, CD nozzle)을 처음으로 적용시킨다. 오늘날, 현대식 로켓의 대부분에는 드라발 노즐이 사용되지만, 최초의 드라발 노즐이 적용된 로켓은 이 고다드의 조잡한 (당시로서는 최신식의) 로켓이었던 것이다.

 

 

이 노즐을 통해 고다드는 엄청난 엔진효율과 초속 2134m 수준으로 뿜어져나오는 가스속도를 얻게 되었다. 

 

 

 

이것은 인류의 우주 개척에 있어서 가장 역사적이고 상징적인 최초의 사건이었다.

 

 

 

로켓은 이제 우주로 날아갈 수 있을만한 충분한 잠재력이 생긴 것이다. 

 

 

 

동료 과학자들은 고다드의 성과에 놀라워하면서도 반신반의했다. 

 

 

 

이 로켓의 강력함 정말로 지상에서와 마찬가지로 우주공간에서도 적용될지는 미지수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고다드는 실험실에서의 연구를 거듭했고, 로켓이 우주공간에서도 아름답게 날 수 있음을 확신했다. 

 

 

 

이 연구실에서 고다드는 현대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위대한 업적을 하나 더 쌓게된다. 

 

 

 

 

 

 

 

 

 

 

(이온 추진기)

 

 

바로 이온 추진기Ion Thruster의 개발이었다. 

 

 

이온 추진기 개념에 대한 공식적 발명가는 러시아의 치올코프스키로, 그는 이미 1911년에 이를 발표했었다.

 

 

그러나 이보다 앞선 1906년에, 젊은 몽상가 고다드는 이미 수첩에 이온 추진기에 대한 구상을 적어놓은 바 있었고, 마침내 1916년~1917년의 일련의 실험들을 통해 간단한 이온 엔진을 실험해볼 수 있었다. 

 

 

이 이온 엔진은 우주 공간에서의 사용을 전제로 하고 개발되었지만, 당시의 여건상 대기압에서 실험되었으며 성공적으로 이온화를 발생시켰다. 

 

 

거듭된 성공적 실험으로 로버트 고다드는 고무되었다.

 

 

그러나 그의 자금사정은 계속해서 열악해졌고, 연구소의 지원은 그의 거대한 실험들을 감당할 수 없었다. 

 

 

고다드는 스미스소니언 협회, 내셔널 지오그래픽 소사이어티, 아메리카 에어로 등에 편지를 보내며 후원자를 찾아나서기 시작했다. 

 

 

스미소니언 협회에서 연락이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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