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ADHD 유전자가 살아남은 이유를 알아보자.
시간약속을 안지키는 사람들은 사회에서 좋지 못한 평가를 받는다.
무엇보다 현대사회는 시간이 곧 금인 사회다.
그런데, 약속시간에 매일같이 늦는 사람들이 있다.
때로는 1시간 이상 늦기도 한다.
이들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결여된 '무뢰한(無賴漢)' 소리를 듣는다.
이들은 말 그대로 무無 뢰賴 한漢 (의지(賴)가 없는 사람) 이다.
시험은 늘상 벼락치기에,
잠이 들때면 아침에 세운 이루지 못한 계획이 아른거려 눈물흘리기를 반복한다.
남들은 약간의 의지만으로 가능한 일이 이들에겐 매우 복잡하고도 거대한 일이다.
흥미가 있는 분야에는 누구보다도 뛰어난 집중력을 보이지만,
새로 시작한 일은 늘상 용두사미,
끝맺음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새로운 이슈가 생기면 그 이전의 이슈는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까맣게 잊어버리며,
마침내는 인간관계마저 파국에 이르기도 한다.
이들은 남들이야 당연하고, 본인들 스스로도 대체 자신이 왜 그러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이쯤되면 정말 뭔가 이사람들만을 탓하기 힘들어보인다.
이 사람들은 분명 자기가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인지하고 있고, 개선하려는 노력도 한다.
하지만 각고의 노력끝에 어떤 것을 습관화해도 여전히 삶의 또다른 부분에서는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하거나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여러 문제들을 가지고 있다.
남들로서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엄청난 노력을 늘상 하고 있을수도 있다.
남들이 강박이라고 여길만큼 빼곡한 계획을 종이에 항상 적고있거나
“내가 그걸 어디다 뒀더라.”가 입버릇인 이들은 바로,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환자들이다.
ADHD를 ‘앓는’ 사람들은 종종 근대 산업화 이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다만, ADHD가 발현될 수 있는 유전적 조건을 지녔다고 해서 모든 이가 스스로의 ‘장애’를 의식하는 것은 아니고, ADHD 또한 정도에 있어서 유전적 스펙트럼을 가지며, 개인에 따라 각고의 노력을 통해 현대 사회에 무리없이 적응할 수도 있다. 다만 편의상 ‘ADHD적 조건을 타고난 사람’을 지금부터 ‘ADHD’로 통칭하겠다.)
엄격히 통제되는 시간개념,
체계적인 지식의 습득과 응용 등
현대사회에서의 많은 핵심적인 인간활동들이 분명 ADHD의 특징들과 마찰을 일으킨다.
그런데 신기한 사실은, 이 ADHD의 핵심적 원인이 바로 ‘유전’이라는 것이다.
ADHD의 유전확률은 80퍼센트에 육박하며, 정신질환 중에서도 상당히 안정적으로 유전되는 축에 속한다.
연구에 따라 ADHD는 쌍둥이에게서 60%~91% 사이로 공유되는 양상을 보이며, 직계혈족에게는 3~40퍼센트의 확률로 계승된다. 즉, ADHD의 운명은 태어날 때 정해지는 것이며, ADHD 부모를 가진 사람이 그 자신도 ADHD일 확률은 부모가 ADHD가 아닌 경우에 비해 최소 10배 이상 높다.
참고: Thapar, A., & Stergiakouli, E. (2008). An Overview on the Genetics of ADHD. Xin li xue bao. Acta psychologica Sinica, 40(10), 1088–1098.
Boomsma, D. I., Saviouk, V., Hottenga, J. J., Distel, M. A., de Moor, M. H., Vink, J. M., Geels, L. M., van Beek, J. H., Bartels, M., de Geus, E. J., & Willemsen, G. (2010). Genetic epidemiology of 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ADHD index) in adults. PloS one, 5(5), e10621.)
그러나 ADHD가 정확히 어떤 기전으로 발병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합의가 없다.
다만 도파민 수용체의 유전적 이상이나 전두엽 기능 이상,
(DRD4, DRD5, DAT, DBH, 5-HTT, HTR1B, SNAP-25 등 매우 복합적인 유전적 원인에 기인)
참고: Faraone, S. V., Perlis, R. H., Doyle, A. E., Smoller, J. W., Goralnick, J. J., Holmgren, M. A., & Sklar, P. (2005). Molecular genetics of attention-deficit/hyperactivity disorder. Biological psychiatry, 57(11), 1313–1323.
혹은 신경전달물질 불균형과 호르몬 문제가 원인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그렇다면 살아가는데 이렇게 불리할 것 같은 특성이 어떻게 사라지지 않고 대를 이어 내려져왔던 걸까?
현대인 중에서 잠재적 ADHD 환자는 전체인구의 최대 20퍼센트 가량, 무려 다섯 명 중 한명이 ADHD거나 적어도 그 경계에 있을 것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보수적으로 적게 잡아도 5퍼센트 가량이라는데, 역시 적다고는 할 수 없는 비율이다.
무엇보다 살아가는 데 불리한 형질을 가진 사람이 지금까지도 이토록 많다는 게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살아가는데 불리했다는 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들만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만일 이들이 들짐승을 사냥하고 야생식물을 뜯어먹는 전근대 수렵채집사회를 살았다면, ADHD 환자들의 특징은 어쩌면 훌륭한 미덕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들의 산만함은 사냥 도중 위험한 포식자를 만났을 때나,
갑작스런 외부 환경의 변화로 인해 능동적으로 대처해야할 때,
다른 이들보다 더 침착하고 효율적으로 집중의 대상을 전환하게끔 했을 것이다.
교실에서 선생님의 지루한 수업을 무시하고 창 밖에서 날아다니는 새들을 관찰하곤하는 아이들은 오늘날 수업분위기를 흐리고 학업성취도가 떨어지는 집중력 부족한 '문제아' 취급받지만,
원시밀림의 수렵집단에서는 누구보다도 미세한 소리와 흔적을 잘 알아차리는 뛰어난 '척후'로서 활약했을 것이다.
본인의 목숨뿐만 아니라 본인이 속한 그룹을 여러차례 위기로부터 구해내기도 했을 것이다.
살아있는 탐지기 역할을 하는 이 ADHD 환자 몇몇이 섞여있는 조직은 그렇지 못한 조직에 비해 유리했을 것이다.
오늘날의 세상은 위험요소가 너무나도 적고, 사회는 안정적이다.
누구나 오랫동안 인내하며 자신을 갈고 닦으면 빛을 볼 수 있다는 ‘보장’이 있는 세상이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이 살던 과거는 가혹하고도 변화무쌍했다.
자연이 변덕을 부리고 포식자들은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세상이었던 것이다.
하루에 몇시간씩 땡볕에서 농작물을 관리하거나, 가만히 앉아서 책을 읽는 능력이 이들에겐 없었고, 필요하지도 않았다.
반면 하루에 10시간씩 앉아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TV에 나와서 박수를 받지만,
사냥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못할 확률이 높았을 것이다.
꿀벌집을 채취하는데 집중하다가 그만 천천히 다가오는 곰의 발소리를 듣지 못했을테니까.
물론 이것은 하나의 가정일뿐이다.
오늘날의 모든 ADHD가 수렵채집사회의 뛰어난 사냥꾼이거나 훌륭한 리더는 아니었을 것이며,
고도의 인내와 유연한 집중조절능력을 가진, ‘전형적 농부’가 무작정 쓸모없는 존재였던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모든 것은 단지 비율의 문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오늘날 RPG 게임에서 파티를 짜는 데 패치에 따라 적절한 직군 분배가 필요하듯,
적절한 ADHD 구성원과 농사꾼의 비율은 언제나 이들이 처한 환경에 따라 변해왔을 것이다.
단지 수렵채집사회에서는 효율적인 ADHD 구성원의 비율이 농경사회나 오늘날의 현대사회에 비해 높았을 뿐이다.
다음시간에는 지구의 기울기가 잠깐 움직인다는 새로운 패치로 인해,
특히 어떤 행운의 위도대에서 발달하기 시작한 독특한 생활양식,
즉 최초의 농경을 알아볼 것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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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언: 또 다른 연구결과
ADHD와 수렵채집사회 사이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지금도 서로다른 학설들이 상쟁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이번 글은 과거 수렵채집인에게서 adhd가 유리했다는 '진화적 불일치론(이전에 유리했던 형질이 환경의 변화로 인해 부적응적이 되는 사례)'의 가설 몇가지를 섞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참고로 ADHD와 관련한 진화적 불일치 가설은 이번 글에서 소개한 '사냥꾼vs농부 이론'이나 '외부환경 민감론' 말고도 여러가지가 있는데,
ADHD의 충동적이고 부주의적인 특성, 즉 폭력성과 연관지어 ADHD 걸린 현생인류들이 네안데르탈인들을 선빵치고 다 학살해버려서 생존할 수 있었다는 '파이터 이론'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최근의 몇몇 연구는 수렵채집사회에서 농경사회로 이행될때의 ADHD 유전자들이 받은 선택압력이, 같은 수렵채집사회인 서로 다른 시기의 석기시대에서 보여지는 ADHD 유전자들간의 선택압력이 비슷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굳이 비유하자면 15만년전~14만년전 사이의 1만년과 1만5천년 전~ 5천년 전 사이의 농경태동기 1만년을 비교해봤을 때 ADHD 유전자 비율이 비슷한 정도로 줄어들었다는 것... 즉 기존의 사냥꾼vs농부 가설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ADHD가 환경에 부적응적이 된 것은 어쩌면 우리 생각보다 더 오랜 옛날부터였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물론 국지적으로는 오히려 ADHD가 적응적이라는 연구결과 자체는 지금도 쏟아지고 있다. 이를테면 화산지역처럼 변화무쌍한 지역에서 ADHD가 유리하다는 사실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연구결과가 더 쌓여야 알 수 있겠지만,
만약 최근의 학설이 더 많은 증언을 보충하게 된다면,
우리는 더 암울한 몇몇의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ADHD는 사냥꾼의 후예가 아니며,
우리 생각보다,
그리고 우리 몸보다,
우리의 주변이 너무나도 빨리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몸이 수렵채집사회의 산물이라는 것도 반만 맞는 말이 된다.
우리는 아직 점점 더 복합적으로 변화해가는 최신식의 수렵채집사회에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채,
너무나도 갑작스레 농경사회로 이행했으며,
그 농경사회에는 (적응적 의미로서) 발을 딛기도 전에,
산업사회로 훌쩍 도약해버린 것이다.
적응적 의미에서 우리의 몸은 지금, 허공을 딛고있는 상태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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