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수렵채집의 삶을 살던 인간이 어떻게 처음으로 아프리카를 벗어났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 것이다.
1. 아프리카에 살던 조상들: 초창기 호미닌
아프리카에서만 살던 인간은 언제, 그리고 어째서 전세계로 퍼져나간걸까?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인류의 조상이 아프리카에서만 살던 때로 거슬러올라가야한다.
700만년 전, 동부 아프리카 열곡대의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 무리의 일부는 나무에서 내려 와 이족보행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 100만년 동안은 다소 서툴렀지만, 훗날 오로린 투게넨시스라고 불리게 될 일군의 영장류 무리는 점차 습관성 이족보행을 하기 시작했다.
다시 수십만년이 지난 뒤, 1.2m 가량의 아르디피테쿠스속의 호미닌들은 오늘날 인간과 침팬지의 중간 정도 되는 이족보행 능력을 갖게되었고, 450만년 전의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게 그 능력을 물려주게된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330만년 전, 처음으로 돌을 쪼개 손에 쥐었다.
롬크위 석기: 당장 밖에 나가 돌을 내리쳐 날카롭게 부수면 당신도 롬크위 석기 제작자가 될 수 있다.
이 투박한 롬크위(Lomekwi) 석기는 겉보기에는 그저 돌멩이에 불과하지만, 몸돌(core)에서 박편(flake)을 의도적으로 떼어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마천루, 비행기, 로켓, 그리고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의 조상이 바로 이 투박한 석기다.
300만년 전, 가혹한 기후변화는 석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집단을 절멸시켰고, 다시 20만년이 지나자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초기 호모속의 특징이 이리저리 뒤섞여있는 개체군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호모속의 가장 오래된 표본 'LD 350-1'
이들이 바로 우리의 직계 조상, 최초의 호모속Homo 이었다.
2. 최초의 아프리카 대탈출: 호모 하빌리스와 호모 에렉투스
초창기 호모속이 살던 투르카나호 유역
230만년 전에 등장한 호모 하빌리스는 이전보다 더 정교한 올두바이 석기를 사용했고, 골수와 뇌를 포함한 더 많은 고기를 주워먹기 시작했다.
올두바이 석기: 다소 정교해졌지만, 기본적으로 롬크위 석기와 큰 차이는 없다. 올두바이 석기는 동물 가죽을 찢을만큼 충분히 날카로웠을 것이다.
다른 포식동물들이 반쯤 뜯어먹다 버린 갈빗살에는 각종 필수 아미노산과 미량영양소가 풍부히 들어있었다. 뇌와 골수의 지방은 칼로리마저 높았다. 고기반찬을 먹은 이들의 뇌도 어느새 우리의 절반 가량인 630cc 정도로 커져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뇌를 키우지 못한 쪽이 후손도 남기지 못하고 다 죽어버렸을 정도로 가혹한 환경에 놓여있었을 것이다.)
190만년 전에 출현한 호모 에렉투스는 훗날 아슐리안 석기 제작 기술을 발달시켰다.
모드 II라고도 불리는 이 아슐리안 석기의 한 쪽은 잡기 쉽게 뭉툭했고, 반대편은 날카로운 대칭의 단면을 지녔다. 이 주먹도끼를 만들기 위해 그들은 완성품의 모습을 미리 예측해야했고, 날카롭게 부수기 적당한 돌멩이를 골라야했다.
그들은 여러 돌멩이들의 서로 다른 성질을 이해하고 기억했으며, 쓸만한 돌들의 산지를 머리 속 가상의 지도에 저장해뒀을 것이다. 어떤 석기는 무려 10km 가까이 떨어진 곳에서 가져온 돌로 제작됐다. 그렇게 먼 곳에서 무거운 돌들을 운반하는 과정은 고통스러웠을 것이고, 만일 신중하지 못하게 잘못 부숴버리면 그 동안 들인 노력은 허사로 돌아갔을 것이다.
이들을 둘러싼 환경은 여전히 가혹했고, 예측과 기억의 능력을 더 발달시킬 수 있도록 호모 에렉투스는 꾸준한 선택압력을 받았다. 이후 수십만년간, 이들의 뇌용량은 투르카나 호수 유역이라는 같은 생활영역을 공유한 친척종 호모 하빌리스들보다 200cc 가량 더 커지게된다.
더 큰 뇌는 훨씬 더 많은 에너지 소모를 일으켰기에, 뇌가 점차 커지는만큼, 신체의 다른 부위도 발맞춰 적응해야했다. 이 시기에 호모 에렉투스의 머리와 어깨 부분을 제외한 온 몸의 털이 서서히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털 대신 피부에서 열을 방출하기 시작하며, 덥수룩하게 피부를 뒤덮고 있는 털은 햇빛을 직사로 받는 머리나 어깨, 가슴팍 일부분을 제외하면, 방해물로 전락했던 것이다. 털없는 원숭이는 말 그대로 떠돌이 에디션이었다.
아프리카는 죽음의 열병이 도사리는 대륙이다. 오늘날의 야생 침팬지 또한 상당수가 열대의 전염병에 의해 사망한다고 한다.
어떤 곳에 사는 이들이 급격한 기후위기에 직면하거나 더 똘똘한 친척종의 등장으로 인해 압력을 받는 경우, 혹은 열대의 주기적인 역병으로 픽픽 쓰러져나가는 경우, 자연스레 떠올릴만한 해결책이 하나 있다.
그곳을 떠나는 것이다.
초창기의 호모속은 점차 효율적인 떠돌이들이 되고 있었고, 압력에 직면한 이들이 아프리카를 떠난 최초의 조상들이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우선은 올두바이 협곡을 떠나는 일이 먼저 벌어졌다. 호모속은 아프리카 최남단의 오늘날 케이프타운 인근까지 넓게 퍼지기 시작했다.
호모속의 식단이 육식 위주로 전환되기 시작한 것도 이들을 움직인 동인이 되었을 것이다. 초기 호모속은 적극적 포식자라기보다는 여전히 시체 청소부에 가까웠지만, 대형 육식동물들과 동물 사체들의 분포를 따라 이전보다 더 역동적인 거주지를 지니게 되었다. 그들은 하늘을 빙빙 도는 수릿과 맹금류의 울음소리에 귀 기울이고, 거대한 고양잇과 동물들의 발자국을 따라갔다.
유라시아 대륙으로
아프리카 대륙을 떠난 것은 호모 하빌리스 계통을 잇는 일군의 후예들이 최초였을 것이다. 오늘날 조지아 공화국에서 발굴된 드마니시 호미닌, 혹은 호모 에렉투스 게오르기쿠스라고도 불리는 이 180만년 전 호미닌들의 유해는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논쟁의 중심에 있다.
그들이 호모 하빌리스와 초창기 호모 에렉투스의 특징을 모두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두개골 형태와 뇌의 크기는 호모 하빌리스와 가까웠고, 가장 키가 큰 개체도 여타의 호모 에렉투스보다 작았다.
출토된 석기의 형태도 투박했다.
어떤 과학자들은 드마니시 호미닌을 두고 호모 하빌리스의 아종이라 보고, 다른 과학자들은 호모 에렉투스의 아종이라 말하며, 또 다른 과학자들은 아예 독립적인 호모 게오르기쿠스 종으로 명명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정확히 어떤 종에 속하느냐에 대해선 명확한 합의가 없지만, 그들이 직립보행과 장거리 이동에 매우 익숙했다는 해부학적 특성들은 속속들이 드러났다. 그들은 현재까지, 아프리카를 벗어난 최초의 조상들, 최초의 모험가이자, 최초의 유라시아인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대략 이 시점을 전후로 하여 아프리카에서 호모 하빌리스의 발자취는 사라져버린다.
아슐리안 석기의 주요 출토지역: 아시아 지역에서 아슐리안 석기가 드물게 나타나는 것은, 이 지역에선 단단한 식물성 자원(증거가 남지 않음)을 가공하는 것이 석기를 가공하는 것보다 싸게 먹혔기 때문이 아닌가하는 가설이 있다.
이후 수십만 년 동안 아프리카에서 지성을 발달시키는 가혹한 시련을 겪으며, 호모속은 여러 차례 유라시아 대륙으로 여정을 떠난다. 그러나 그들은 사실 자신들이 어딘가로 향해 가는지조차 체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수십만년에 걸친 지난한 여정은 어느 개체의 일평생동안 겨우 수km에 불과할 정도로 느릿느릿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 최초의 이주자 개체들은 여성이었을 확률이 높을 것이다.
호모속의 집단은 호모 사피엔스들의 수렵채집사회, 그리고 침팬지 집단과 마찬가지로, 대체로 부계적 공통성을 가진 집단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 집단의 수컷 침팬지들은 외부에서 흘러들어온 수컷 침팬지는 살해하지만, 외부에서 흘러들어온 암컷 침팬지들은 마다하지 않는다.
집단간 여성 구성원을 서로 교환하는 혼인동맹의 원시적 형태는 집단간의 폭력을 억제하고 근친교배를 회피하는 데에 있어서 진화적 이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침팬지와 마찬가지로 가까운 사이의 부계 친족들로 강하게 결속된 형태의 이 호모속 집단들은 원시적 형태의 의사소통을 발달시키며 서서히 거대해지고 있었다.
140만년 전 최초의 이주자들 중 한 갈래는 먼저 중동으로 갔다. 이스라엘 우베이디야 유적지에서 발굴된 수천 점의 아슐리안 석기와 호모 에렉투스 청소년의 유해가 이를 증명한다.
요르단 강과 사해를 끼고 있는 이 레반트 회랑 일대는 140만년 전 당시 풍부한 동식물로 가득한 풍요로운 지역이었다. 아슐리안 석기는 곧 유라시아 대륙 사방에서 발견되기 시작한다.
140만년 전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역에 도착한 한 갈래의 호모 에렉투스 무리는 그곳의 터줏대감 포식자들과 어색한 조우를 했다. 그들은 거대한 고양잇과 짐승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노력하는한편, 하이에나와는 하마 시체를 두고 경쟁했을 것이다.
동아시아로
이후 40만년 간, 호모 에렉투스는 유라시아 대륙 동서의 해안가를 따라 가능한 모든 생태의 틈새를 메워갔다. 이들은 본래 아프리카의 더운 기후에 적응한 동물이었고, 북위 50도라는 위도선이 바로 이들의 북진을 가로막는 방파제가 되었다.
그러나 그 선 아래에서 이들은 자유로웠다. 유라시아 동서의 내륙지역으로 들어갈수록 이들은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냉혹한 겨울을 이겨내야 했는데, 다행히도 이들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동굴 속에 들어가 사는 돌파구를 찾아낼 수 있었다. 이는 오늘날의 고고학자들에게도 참 다행인 일이었는데, 동굴이 이들의 흔적을 통조림처럼 보관해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40만년이 지난 뒤, 대략 60만년 전, 오늘날의 베이징 근처 저우커우뎬의 동굴에도 일군의 호모 에렉투스 무리가 살고 있었다. 북경원인(Homo erectus pekinensis)이라고도 불리는 그들은 위도 40도 지역인 이곳의 추위에 적응하여 땅땅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고,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어쩌면 야생마나 같은 북경원인의 머리를 불에 구워먹었을 수도 있다. (의도적으로 불에 구워먹었느냐에 대한 여부가 논란이라는 것이다. 식인 행위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거의 없다.)
인도네시아로
옛 인류 지성의 맹아가 동북쪽 변경인 베이징에서 발견된 한편, 이들의 남방한계선에선 또다른 놀라울만한 증거들이 속속들이 드러나게 된다.
네덜란드령 동인도에서 발견된 이 유골들이 바로 호모 에렉투스 에렉투스, 1891년에 최초로 발견된 호모 에렉투스의 모식 표본이었다.
이후 일백년이 넘는 세월동안 인도네시아에서 추가로 발견된 증거들은 하나같이 이들의 지성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탁월했음을 가리켰다.
키가 173cm에 육박했던 이들은 우리처럼 똑바로 서서 걸었으며, 어쩌면 불을 사용했을 수 있고, 꽤나 복잡한 언어를 구사했을지도 모른다. 언어 구사와 도구 사용은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었고, 이들은 날카로운 조개를 다듬어 고기를 잘랐다.
심지어는 이들이 원시적인 보트를 건조해 뭍과 뭍 사이를 항해했을지 모른다는 주장도 등장했다. 85만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호모 에렉투스의 화석이 '플로레스 섬'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85만년 전의 해안선은 오늘날과 달라서, 드넓은 대륙이 동남아시아 남쪽으로 계속해서 이어져 말레이반도, 수마트라섬과 보르네오섬, 그리고 인도네시아의 자바와 발리섬을 하나로 엮는 순다 대륙이 있었다. 따라서 이족보행이 능숙했던 호모속의 일원이라면 이론상 오늘날 바다 위로 남아있는 이들 지역 전역에서 발견될 수 있다.
그러나 플로레스 섬은 85만년 전의 해안선으로 추정하여도 순다대륙과는 20km 가량의 롬복 해협으로 가로막혀 생물군에 있어서도 명확한 기준점이 되는 월리스 라인의 경계 너머에 있었다.
현재까지 발굴된 최고(最古)의 실물 보트는 1만년 전에 만들어졌다. 저 보트와 우리 사이의 갭만큼 84번의 테이프를 더 되감으면, 어설픈 항해를 시도하다 간신히 뭍에 떠밀려내려온 호모 에렉투스 몇 개체를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다른 동식물들과 다르게 호모 에렉투스가 해양 장벽을 넘을만한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었음을, 즉 배를 만들어 바다를 건너갔(거나 난파했)단 사실을 암시했다.
그런데, 이 플로레스 섬에서는 훨씬 더 놀라운 발견이 이어졌다. 성체임에도 키가 1m 20cm 정도에 불과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일군의 호미닌 유해가 석회동굴에서 발굴되었는데, 그들은 호모 에렉투스의 특징을 상당 부분 공유하지만 사실 호모 하빌리스나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어떤 초기 호모속 호미닌들의 후손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온 것이다.
어쩌면 최초의 항해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그 유래가 더 오래되었을지 모른다. 호모 에렉투스는 확실히 항해인이었고, 호빗들의 조상은 유서가 깊었다.
다음 시간에는 이 신비로운 호빗 종족, 플로레스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유튜브 영상으로 만든 대본입니다. 공유하실 땐 출처를 남겨주시고, 영상으로 만들어 올리거나 수익화하진 말아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런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붙이는 추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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