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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갤러리 2021.10.15

 

왜 한국 리얼리즘은 그렇게 지루한가?에 대한 문제.

 

 

우리는 보통 산문이 언어의 바탕이고 시가 그 정수라고 생각하는데,

 

 

(몰리에르는 이런 생각을 <서민귀족>에서 풍자했는데, 희곡의 주인공이 자신이 40 평생 산문으로 말해왔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어 고맙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사실 서구 문학사를 보면 시가 먼저 발달하고, 산문 문학은 시로부터 파생된 장르 형식이다.

 

 

그러므로 서구 문학사에서 시어와 산문어는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으며,

 

 

산문어는 시어의 부재, 변형, 확장을 통해 시어의 연장선상에서 시어와 연결된다.

 

 

그러므로 산문어는 시어에 비해 2중의 복잡성을 가진 언어이다. 산문의 배후에는 언제나 시가 있으며,

 

 

시적 감각 없이는 서구 산문을 불충분하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서구 문학은 현실에서 환상이 추출된 것이 아니라,

 

 

환상, 즉 신화로부터 현실로 이행한 것이다.

 

 

리얼리즘 이전에 문학 안에서 환상, 영웅담은 현실의 일부였던 것이 아니고, 사실상 유일한 주인공이었다.

 

 

서구 문학에서 '현실', '평범성'이 문학의 주제가 될 수 있기까지는 대단한 문학 전통의 축적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즉 서구 문학에서 현실이란 환상 문학의 극단에서 발견되었던 새로운 미지의 영역이었다.

 

 

이를테면 기사도 문학의 끝자락에서 돈 키호테가 나타나지 않았는가?

 

 

그러므로 서구 리얼리즘은 리얼리즘 이전의 환상 문학을 배경으로 가진, 엄청난 복잡성을 가진 장르이다.

 

 

고전주의, 낭만주의 문학에 리얼리즘식의 '우연한 것'의 세계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 안에서 모든 것은 대단히 운명적이다.

 

 

운명적인 세계에서 우연한 세계로 이행하는 데는 엄청난 문화적 축적이 요구되었다.

 

 

그러므로 서구의 고전적 리얼리즘 문학은 현실 자체를 다루는 문학이 아니라, 이전까지의 고전 문학 전통 위에 얹혀 있는,

 

 

"현실처럼 보이는 것"을 다루는 문학이다.

 

 

("현실 자체"를 다루고자 했던 서구 소설가들은 그만큼 고전주의 전통으로부터 이탈할 수밖에 없었다.)

 

 

"현실 자체를 다루는 문학"과 "현실처럼 보이는 어떤 것"을 다루는 문학 사이에는 거대한 심연이 놓여 있다.

 

 

당연히 한국 리얼리즘 문학은 서구 문학처럼, 호메로스부터 시작되는 거대한 환상 문학의 전통을 갖고 있지 못하기에,

 

 

현실 묘사의 배후에 복잡한 맥락을 가질 수 없었고,

 

 

이러한 "배후"의 맥락의 빈약함은 여러 면에서 표출될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고 본다.

 

 

이를테면 남미의 마술적 사실주의 문학이 변경에서 돌연히 생겨난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남미 문학 역시 스페인어라는 대단히 비옥한 토양 위에서 꽃피었던 것이다.

 

 

상호텍스트 이론에 따라 하나의 텍스트가 다른 텍스트들의 모자이크라면,

 

 

훌륭한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조각들이 필요한 셈이다.

 

 

결론으로 나는 이렇게 말해 두겠다.

 

 

"현실 자체"를 묘사하고자 했던 리얼리즘 문학은 절대다수가 실패했다.

 

 

어째서인가? 현실이란 언제나 빙하의 일각이기 때문이다.

 

 

가장 성공을 거두었던 리얼리즘 문학은 대담하게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파고들어 현실의 영역을 확장했던 문학이었다.

 

 

이를테면 톨스토이가 묘사하는 현실이 '현실 그 자체'처럼 보이는가?

 

 

그것은 톨스토이의 기교의 결과물인데, 사실 현실 속에 톨스토이가 묘사한 것과 같은 과밀된 감각 세계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들 중 누구도 "낯설게 하기"로 이루어진 세계에는 살고 있지 않은 것이다.

 

 

서구 리얼리즘 문학은 단기간에 놀랍도록 발전하여, 카프카나 조이스 같은 작가들을 낳기에 이르렀다.

 

 

카프카나 조이스에 이르면 리얼리즘의 "현실처럼 보이는 것"은 다시 뒤집혀 이제 현실과 환상의 재현은 구분되지 않는다.

 

 

현실에서는 회사원은 물론 벌레로 변하지 않고,

 

 

누구도 조이스식 의식의 흐름대로 살지 않는다. 조이스의 의식의 흐름은 현실의 의식 그 자체의 묘사가 아니라, 현실의 의식처럼 보이는 상징 세계의 퍼즐일 따름이다.

 

 

즉 현실과 환상 간의 경계를 허무는 것은 서구 리얼리즘의 발생 조건이자 일관된 발전 방향이었다.

 

 

서구 리얼리즘을 통하여 환상은 현실처럼 보이는 경지에 도달했던 것이다.

 

 

리얼리즘을 통해 환상은 드디어 일상 생활 속으로 강렬하게 침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모든 맥락이 한국식 리얼리즘에는 결여되어 있으며,

 

 

한국 작가들의 현실관은 대부분 매우 피상적이다(어떤 면에서 이성적으로는 뛰어날지라도, 감각적으로는 대부분 피상적이다).

 

 

이는 한국 리얼리즘이 서구 리얼리즘의 표면만을 핥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예란 본질적으로 예술이다.

 

 

즉 그것이 가치를 갖기 위해서는 감각적 깊이에 도달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세계의 현대 문학은 감각적으로 퇴화하고 있고,

 

 

(부분적으로는 극도로 예민해지면서 전체적으로는 극도로 둔감해진다는 것이 현대인의 감각적 특성이다. 그래서 고전 문학은 더욱 커다란 가치를 갖는다)

 

 

한국 문학의 감각 세계 역시 협소해지고 얕아지고 있다.

 

 

(한국 문학에 세계 문학의 흐름을 거스를 수 있을 정도의 역량이 있을까? 그러나 상남자들은 유불리를 신경 쓰지 않고 언제나 자신의 길을 가는 법이다.)

 

 

인간에게는 왜 깊은 감각의 단련이 필요한가?

 

 

사실 깊은 감각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깊은 감각 없이는, 인간은 깊은 행복감 역시 느낄 수 없는 법이다.

 

 

그러므로 고전 문학은 필요한 것이다.

 

 

 

↓  출처  ↓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eading&no=329251 

 

서구 문학 안에서의 현실과 환상 - 독서 마이너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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