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금
오늘은 커피와 미녀와 축구의 나라 콜롬비아가 어떻게 마약카르텔의 천국이 되었는지 알아보자.
커피의 나라
콜롬비아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는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콜롬비아산 커피일 것이다. 콜롬비아는 브라질, 베트남에 이어 세계에서 세번째로 커피를 많이 생산하는 나라다.
실제로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먹는 커피는 어느새 브라질을 제치고 콜롬비아가 1위라 할정도로 콜롬비아 커피는 국내에서도 영향력이 강하다. 나는 커피를 잘 안마셔서 어디 산 커피가 젤 맛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뭔가 세계에서 제일 많이 생산되는 브라질산 커피보다 콜롬비아산 커피가 더 고급이라는 이미지가 있는거 같다.
미녀의 나라
콜롬비아는 미녀로도 유명하다. 사실 남미는 브라질이나 베네수엘라나 콜롬비아나 전부 미녀로 유명하다. 걍 남미 자체가 미녀가 많은듯. 그리고 킹탄소년단 덕분에 남미에서 한국인 이미지가 꽤 좋아졌다고 한다. 옛날에는 걍 이 사람들한테 아시아인이라하면 치노(중국인), 하뽄(일본인) 둘 중 하나였고, 한국인은 치노와 하뽀네스 그 사이 어딘가였는데 말이다.
축구
그리고 콜롬비아는 남미국가답게 축구를 사랑한다. 월드컵 8강에 올라간적도 있었고...
하지만 역시 국내 축구팬들에게 콜롬비아는 비극적인 사건으로 유명할 것이다.
안드레스 에스코바르.
그는 메데인(현지 발음으로는 메데진Medellín)에서 태어난 또 한명의 에스코바르였다. 그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으며 아틀레티코 나시오날의 살아있는 전설이었다. 항상 매너있고 침착한 플레이를 펼쳤기에 '신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그는 단 한번의 자책골로 고향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일설에 따르면 그를 살해한 사람은 마약 카르텔의 일원이었으며 총을 발사할때마다 '골!' 이라고 외쳤다고 한다.
메데인Medellín.
콜롬비아 마약 카르텔의 역사를 이야기하기 위해선 이 도시를 빼 놓을 수 없다. 마약 카르텔은 하루아침에 뿅하고 생겨난 것이아니라 적어도 수십년동안 이 영욕의 도시에 암약해있던 밀수의 전통속에서 마침내 꽃을 피운 것이기 때문이다.
안티오키아의 주도인 메데인은 본래 콜롬비아 최대의 공업도시이자 커피 농사도 짓는 곳으로,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지도를 보면 안티오키아 주의 북단이 바다에 닿아있는 것을 알수있을텐데 메데인에서 생산을 하고 저기로 수출을 하는 구조였음.
특히, 1950년대에 메데인은 섬유산업의 메카였고, 콜롬비아를 잘 맥여살리고 있었음.
0. 섬유산업의 몰락
그런데 50년대 말, 메데인의 섬유산업이 멸망했고, 도시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실업자들은 폭증했다. 사람들이 화나기 시작했다... 치안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왜냐고?
신흥 아시아 국가들이 섬유산업에 뛰어들었거든..
거기다가 안티오키아 주민들은 원래 성깔이 보통이 아닌사람들로서, '파이사' 정신이라는 독특한 정신으로 유명했었음. 아마 고원지대라는 환경적 요인과 이 시기의 실업률 폭증이 이런 화끈한 성격 형성에 일조를 했을 것인데, 간단히 말해, '우리주의' 와 '한탕주의'라고 보면됨.
"우리가 남이가? 같은 메데진 사람끼리 돕고살아야지"
"아니 월급쟁이로 이렇게 사는게 맞아? 어차피 이런 위기같은거 오면 다짤리고 실업자행인데 뒤질때 뒤지더라도 스케일 크게 놀고 함 우리도 귀족 돼바야하는거 아녀?" 같은 느낌인거지. 이런 강력한 지역적 유대감과 콜롬비아 내에 만연해있던 강력한 후견주의적 전통이 결합되기 시작함.
그리고 불운했던 콜롬비아는 엄청난 행운폭탄들을 맞게됨.
1. 첫번째 행운, 커피 밀수시대의 개막 (50~60년대)
그래서 열린게 대밀수시대임. 아까 말했던 안티오키아의 북부해안이 콜롬비아 밀수의 메카가 되었음.
주요 생산품이었던 커피부터 시작해서 에메랄드에 뭐에 많은 것들을 마구 밀수해대기 시작함.
그럼 콜롬비아 정부는 이런 현실을 보고만 있었느냐?
아니지.
오히려 더 장려함.
그래도 국가라는게, 밀수를, 장려함.
왜냐고? 사실 콜롬비아도 정당한 방법으로 커피를 팔면서 살고 싶었음. 때마침 세계최대 커피생산국이었던 브라질이 냉해로 커피농사가 망했고 콜롬비아가 반사이익으로 떼돈을 벌었거든.
근데 문제가 있었음. 너무 수출이 잘되다보니까 통화량이 급증해서 인플레이션이 와버린것임.
그래서 통화량 규제 긴축정책을 실시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건 사실은 커피생산자들보고 "걍 수출하지말고 밀수해라"라는 유도였던거지.
이때까지는 모두가 좋았음. 커피생산자는 수출으로든 밀수로든 팔아서 돈벌어서 좋고, 실업자나 부랑아였던 거지새끼들은 밀수꾼이라는 국가공인 떳떳한 새 직장을 얻어서 좋고 콜롬비아 정부는 경제가 좋아지고 국민들이 돈벌어서 좋고 도대체 손해보는 사람들이 누구야?
그런데 이런것들이 나중에 어떤 끔찍한 스노우볼링을 굴릴지 이때는 아무도 몰랐음. 국가 근본자체가 썩어들어가고 있었던거임. 지하자금이 서서히 축적되기 시작함.
-> 1. 밀수꾼들이 법집행기관에 무차별적으로 뇌물을 살포, 부패문화 형성.
-> 2. 밀수꾼들의 지하자금 축적, 투자할 수 있는 자본이 형성.
-> 3. 해로를 통한 밀수운송패턴 학습
2. 두번째 행운, 히피와 마리화나 (60~70년대)
대밀수시대에 가속도를 붙인 것이 바로 마리화나였음. 60년대 미국의 히피새끼들이 뻑뻑 펴대는 그 대마초, 원래는 자메이카산, 멕시코산이었는데 미국하고 자메이카, 멕시코 정부가 합동으로 마리화나 생산지에 걍 제초제 뿌리고 불질러버렸음.
아마 이 불타는 대마밭에 관한건 나르코스 멕시코에도 나올껄? 옛날에 봐서 잘 기억이 안나네.
콜롬비아는 운도 좋지. 마리화나 생산, 밀수 시장도 이때 꿀꺽하고 쳐먹어 버림. 물론 이건 단순히 행운이라기보다는 앞서 커피나 에메랄드같은걸 밀수했던 경험으로 인해 축적된 문화, 자본, 그리고 사업능력이 마리화나 사업투자를 가능케 했기 때문임.
암튼 이때 과히라에서 대마 키우던 콜롬비아인들은 커피같은거 밀수하는것보다는 마리화나같은 마약 파는게 훨씬 돈이 된다는걸 알게 되었고, 초창기의 밀수조직들이 점점 전문화되어서 거대 마리화나 카르텔들로 변모하기 시작함.
콜롬비아는 드디어 마약생산국이 되었음! 이때 대마초 밀수꾼들은 콜롬비아 정부 입장에서는 나름 애국자들이긴했음.
오일쇼크 파동으로 일어난 세계경제위기도 콜롬비아는 이 비공식 밀수 경제(커피와 대마초)에 의존해서 버텨낼 수 있었거든.
근데 콜롬비아 애들은 여기서 한술 더떴음. 마리화나, 좀 보니까 수익성은 좋지만 꼴에 마약이라고 단속도 엄청하려는거야. 미국에 파는거다 보니까 언젠가는 자메이카나 멕시코 꼴 날게 뻔해 보이기도 하고.
콜롬비아 정부도 눈감아줄수 있는 데 한계가 있었기에 1978년부턴 콜롬비아의 대마밭도 서서히 불타기 시작함.
이때 콜롬비아의 마약카르텔들은 수익구조를 바꿀 궁리를 했음.
두가지 선택지가 있었겠지.
1. 대마사업은 포기하고 옛날처럼 커피 밀수나 하자.
2. 이왕 이렇게 된거 더 위험하고 비싼 마약팔자.
당연히 뒤가없는 파이사 콜롬비아인들에게 1번선택지는 고려할 가치가 없었음.
그렇게 더 위험하고, 절대 합법화될수없는 마약. 코카인이 등장함.
3. 마지막 행운, 그리고 지옥의 시작(70년대 후반 이후)
원래 코카인 밀매 사업에서 콜롬비아가 담당하던 부분은 일부에 불과했음.
코카인 밀매 구조가 이랬었거든
1. 페루, 볼리비아에서 코카잎 재배 생산
2. 칠레에서 코카인으로 정제
3. 콜롬비아의 운반자 mulas 가 운송.
4. 쿠바혁명이후 미국에 망명해있던 플로리다의 쿠바조직이 분배.
콜롬비아의 뿌리깊은 밀수전통이 있고, 미국과 인접해 있는데다가 수십년 전, 대폭력시대라고 불리는 끔찍한 정치불안속에서 미국에 망명해있던 친척들이 많았기 때문에 콜롬비아인들이 운반자로 적합했었음. 근데 이미 생산, 정제된 제품을 운반만하는데 뭐 얼마나 벌었겠음 푼돈이었겠지.
그런데 콜롬비아가 갑자기 중간 정제 기점으로 급부상한 계기는 칠레 쿠데타였음. 이부분은 드라마 나르코스 첫 부분에도 나옴.
이 쿠데타로 코카인 정제 기술자들은 대거 총살당하고 살아남은 일부가 뿔뿔히 흩어지다가 도착한 곳이 콜롬비아의 밀수꾼 소굴이었던 것임.
정제 기술자들이 콜롬비아에 대거 정착한 덕분에 이제 정제와 운반을 같은 장소에서 한번에 추진할 수 있게 되었고, 밀수꾼들은 이제 엄청난 돈을 갈퀴로 쓸어담기 시작함.
이때 화려하게 등장했던 녀석들이 바로, 코카인 카우보이cocaine cowboys들이었음.
아까 정제와 운반을 동시에 할수있게 되었다고 했는데 코카인 카우보이들을 비롯해서 콜롬비아 마약 카르텔의 진가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함. 바로...
폭력
콜롬비아 카르텔이 다른 여타 마약팔이들과 뚜렷하게 구분되었던것은 뭐 파이사 같은 기업가적 정신이라던가 오랜 세월구축된 밀수의 인프라라던가 뭐 미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웠다던가 이런것들도 물론 중요한 요소였겠지만 가장 특징적이었던 것은 뭐니뭐니해도 '무자비한 폭력' 이었음.
코카인 카우보이들은 미국에서 분배의 역할을 맡던 마이애미의 쿠바조직을 쳐바르고 (코카인 전쟁) 정제, 운반, 생산을 독점하기 시작함. 당연히 돈을 미친듯이 쓸어담기 시작했고, 서서히 재벌에 버금가는 엄청난 몸집의 카르텔들이 곳곳에서 형성되었음.
그럼 대마초 밭 열심히 불태우던 콜롬비아 정부는 이 위험한 새끼들이 등장할때 뭐했느냐? 걍 손놓고 보기만 한거냐?
하면 그렇지는 않았고...정확히는 손놓고 보기만한건 맞는데 일부러 그런건 아니었음 왜냐하면,,,
좌익 게릴라들 때문에 바빴거든... 나르코스고 뭐고 당장은 얘네가 더 큰 문제였기때문에,,,
미국도 이때 아시아산 헤로인하고 마리화나 단속하느라 바빠서 코카인은 신경을 못썼음. 이런 엄청난 행운속에서 콜롬비아의 마약 카르텔들이 성장할 수 있었던거임...
아, 저 M-19 좌익 게릴라는 이후 메데진 카르텔이 마약 카르텔로서는 극히 예외적으로 공개성을 띈 채 활동하도록하는 특별한 계기를 마련해주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근데 이 다음부터는 나르코스 드라마에도 나오는 내용임.
참고문헌
조성권 (1995). 콜롬비아에서 정치폭력의 역사적 기원과 발전. 중남미연구
조성권 (2004). 콜롬비아 메데진 카르텔의 부상과 몰락의 원인분석. 이베로아메리카
조성권, 김원중, 유병호 (2011). 조직범죄의 국가에 대한 도전. 중남미연구
아 참고문헌 말고도 추천할만한 책이 두 권 있는데, 하나는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라틴아메리카의 역사』 라는 책임.
원래 카를로스 푸엔테스가 소설가라 역사책인데도 글이 예쁨. 대충 라틴 아메리카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알 수 있는 책. 옛날에 사놓고 다읽진 못했지만 좋았음. 나중에 독후감 써서 올릴예정.
나머지 하나는 사이먼 하비의 『밀수 이야기』 라는 책.
이건 밀수의 역사에 대한 것임. 옛날에 선물받은 책인데 이런 책인줄 알았으면 꼭 돈주고 사서라도 봤을것이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좋은 책이라고 생각함. 대항해시대의 밀수부터 현대의 마약 카르텔에 이르기까지 밀수가 인류 역사에 준 영향에 대해 쓴 책.
(쿠팡에서 이 책들을 사면 내가) 파트너스 활동을 통해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을 수 있음
2020/12/12 - [독서/내가 느낀거] - 초야권, 있었을까? 없었을까? (1)
2020/12/29 - [내글/역사] - 중세 이베리아의 유대 여성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1)
2020/12/17 - [내글/역사] - 중세 이베리아의 무슬림 여성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1)
'내글 >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에도시대의 안드로이드 오토마타, 가라쿠리(からくり)에 대해 알아보자 (0) | 2021.02.05 |
|---|---|
| 콜롬비아 좌익 게릴라,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 그리고 모순 (6) | 2021.01.28 |
| 도사 + 스님? 도류승(道流僧)에 대해 알아보자 (0) | 2021.01.11 |
| 세종대왕, 어머니께 둔갑술을 시전하다(+ 도지정근桃枝精勤) (0) | 2021.01.09 |
| 중세의 기적치유 (4) - 성인들의 기적 (0) | 2020.12.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