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에도시대의 오토마타인 가라쿠리からくり에 대해 알아보려고 해.
오토마타라는 단어는 원래 '자기 뜻대로 행동한다'는 뜻의 그리스어, 오토마톤(αὐτόματον)의 복수형에서 시작된 단어야.
이 용어 자체는 호메로스로부터 기원할만큼 아주 유서깊은 단어고, 헬레니즘 시대에 오토마타 기술은 첫번째 꽃을 피워.
그런데 이보다도 훨씬 이전인 고대 이집트 때부터 간단한 형태로나마 자동으로 움직이는 기계가 존재했다고 하니, 자동기계의 역사는 그냥 인류문명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고 봐도 될 것 같아.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매우 일찍부터 자동기계에 대한 개념이 존재했는데, 믿거나 말거나 『콘자쿠모노가타리(今昔物語)』에 따르면 간무덴노(桓武天皇)의 7번째 아들 카야노미코가 밭에 물을 자동으로 붓는 양손에 통을 든 자동기계인형을 만들어 가뭄을 해결시켰다는 이야기가 나와. 이때 사람들은 "정말로 훌륭한 가라쿠리からくり"라고 감탄했다고 해.
이밖에도 고대 일본에서 인형은 종교적인 의미를 크게 지니고 있어서 신사나 사찰의 상징물같은 역할을 했대.
그런데 이런 전설같은 이야기 말고 본격적으로 일본에서 사람형태의 자동기계인형이 등장한 때는 언제일까?
그건 바로 서양의 발달한 시계, 기계기술과 같은 문물이 물밀듯이 들어오던 에도시대였어.
1662년, 오사카 도톤보리에서 본래 시계사였던 다케다 오우미키요후사(竹田近江清房)에 의해 일본최초의 인간형 가라쿠리에 의한 공연이 열렸어.
당시 기준으로 새롭게 등장한 최첨단 기술의 인간형 가라쿠리는 지금 현대인들의 시각에서 보자면 단순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신기神機에 가까운 것이었는데, 야마모토라는 어느 하급무사는 일기에,
"바구니를 메고 사람처럼 걷는 인형, 눈과 입을 벌리는 인형, 나무에 올라가 승천하는 용, 사람처럼 말위에서 활을 쏘는 인형 등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村上和夫(2014) 前掲書 p.16, 재인용) 고 말할 정도였어.
다음은 다케다 가문이 대대로 만들었던 가라쿠리 중에서 『차 나르는 인형』 이야.
일찍이 이하라 사이카쿠(井原西鶴, 1642-1693)는 이 인형을 보고 독음백운(独吟百韻)에 '차를 나르는 인형 바퀴 움직임 바삐 구른다’(茶を運ぶ人 形の車はたらきて)'라는 하이쿠를 남기고는 "마치 인간을 방불케 한다. 이를 보니 고대의 히다의 장인이 학을 만들어 타고 하늘을 날았다는 것도 진실일 것이다" 라는 주해까지 덧붙여 놓았다고 해.
(井原西鶴(1948)訳註西鶴全集第2 至文堂 pp.309-310 재인용.)
그런데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던 이 『차 나르는 인형』을 대중들을 위한 오락상품으로서, 다시 말해서 양산형으로 개조, 부활시켰던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바로 뒷날, 가라쿠리기에몽(からくり儀右衛門), 동양의 에디슨 등으로 불리게 되는
다나카 히사시게(1799-1881) 야.
다나카 히사시게는 지배계급의 전유물이자 이제는 책 속에서 잊혀지려고 하던 다케다의 가라쿠리를 독학으로 부활 시켜서(『가라쿠리도휘』를 독학했다고 함) 대중을 위한 오락으로 변형시켰어.
현존하는 최고의 자시키 가라쿠리(실내 가라쿠리)로 평가받는 활 쏘는 가라쿠리, 글씨 쓰는 가라쿠리 같은 것도 이 사람이 제작했대.
이후 다나카는 단순 유희적인 가라쿠리 기술을 넘어 전신기, 전화기, 증기선(료후마루), 군함, 철포와 같은 것을 제작하는 산업자본가로 진화해 일본 근대화의 초석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 과정에서 가라쿠리는 뭔가 뒷전으로 밀려서 서서히 잊혀져 온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가라쿠리를 그저 단순히 대중오락을 위한 장난감으로 볼수도 있겠지만, 인형에 마음이 깃들어 있다고 믿고 숭배하는 고대 이래의 일본인의 종교적 심성과 장인정신, 그리고 더 나은 최첨단을 향해 계속해서 달려나가는 사이버펑크 재팬적 이미지가 한데 융합된 이 고풍스러운 오토마타보다 더 일본을 압축적으로 상징하는 것이 또 있을까?
참고문헌: 본문 중 재인용은 모두 다음 중 최유경의 2019년 논문에서 했음을 밝힘.
이재준, 최유경 (2016) 에도시대 카라쿠리와 기술의 유희성, 일본학연구
최유경. (2019). 다케다 가라쿠리연극과 시계기술 ― 일본의 근대화와 기술의 대중화―. 일본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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