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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글 선요약:

1. 일본군은 죽인 조선군의 코를 베어갔다.

(+ 민간인의 코도 쎄벼갔다.)

 

2. 전근대 동아시아의 전쟁에선 보통 군공을 확인하기 위해 수급(首級)이나 왼쪽 귀를 잘라서 소금에 절여 보관했다.

(일본은 대신 코+인중을 잘랐을 뿐이다.)

 

3. 일본군이 조선인의 코를 베어간 다음에 제사지낸 행위는 전근대 기준으로 유별나게 잔혹한 행위가 아니었고, 걍 전근대 동아시아의 보편적 국룰이었다. 

(물론 민간인 미나고로시 학살은 잔혹한 짓이었지만, 일본이 코를 모아서 무덤을 만든게 무슨 독특한 섬나라적 사이코패틱 기행까진 아니라는 것임)

 

 

 

 

1. 코무덤? 귀무덤?

 

정유재란란 시절 일본군이 조선인(군인 뿐만아니라 민간인들까지) 코를 베어갔다는 것은 매우 유명한 사실입니다. 

 

 

사실 그전 임진왜란 초기까지만해도 민간인 학살도 대체로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고, 조선 아이들한테 일본 글자를 가르치는 등, 뭔가 점령군의 느낌인데요,,

 

 

이후 전쟁이 생각했던대로 안돌아가는거에 개빡돌아버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정유재란 시절부터는 앞뒤 안재고 그냥 "이만큼을 반드시 미나고로시 할것" 이라는 학살 할당량을 내려버립니다. 

 

 

어느정도 무차별적으로 코를 베어서 할당량을 채우고 나서야 주민 생포(사람 잡기人取り: 노예로 데려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할당량은 코 한 되라던데, 제가 당시의 그런 규격을 몰라서 정확히 어느정돈지는 잘 모르겠네요.)

 

 

 

암튼 그 학살 과정에서 수많은 조선 사람들의 가 베어졌습니다.

 

 

일본 곳곳에 귀무덤도 잔뜩 있죠.

 


이 귀무덤을 이총(耳塚 귀무덤)이라고도 하고, 괵총(馘塚)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서 괵(馘)은 '귀를 베다' 라는 뜻을 지닌 한자입니다.

 

 

 

귀무덤? 설마,,, 귀도 자른건가요?

 

 

아뇨. 코만 잘랐어요. 일본의 전쟁터에서는 적의 수급(首級)을 코로 대체하는 전통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원래 무덤 명칭도 귀무덤이 아니라 코무덤이었어요.

 

 

귀 대신 코를 자르는 게 좋았던 이유는 성별을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귀는 두 개고 코는 한개니까 수를 속일 수 없다. 그러니까 코를 가져와라.' 뭐 야사에는 이런 소리가 있는데 헛소리일 가능성이 높은게, 미리 국룰로 한쪽 귀를 정해서 자르면 됩니다.

 

 

이따 설명할 고대 중국에서 유래한 헌괵(獻馘)의식도 왼쪽 귀를 자르는 거거든요. 

 

 

코를 벤다는 것이 그냥 코만 뚝 하고 써는 게 아니라 인중 부분까지 세트로 도려냈는데, 그렇게 하면 인중에 붙어 있는 수염을 통해 남자의 코, 여자의 코를 구별할 수 있었어요.

 

 

당연히 적군의 코라면 수염이 달려있는 남자일 것이고, 수염이 안달려있으면 그냥 애꿎은 민간인 여성이나 아이를 죽인거니까 군공으로 인정 받지 못한거죠.

 

 

물론 그렇다고 여자가 코베기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답니다!  전쟁터에서만 코베기를 안당했다는거에요.

 

중세 이베리아의 유대 여성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1)

중세 이베리아가 대충 어떤 동네였는지에 대해서는 이 중세 이베리아의 무슬림 여성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1) 글에서 간략하게 설명한 바 있으므로 그 포스트를 먼저 읽은 뒤에 이 글을 읽는 게

sickstarfiresun.tistory.com

제가 예전에 썼던 위 글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중세시대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자의 코를 베는게 약간 전통문화였어요. 여성 신체의 아름다움을 훼손하기 위함이라나 뭐라나.

 

 

오히려 형벌로서의 코베기는 주로 여성들이 당했습니다. 얼굴 훼손의 연장격인 형벌이었는데요. 중세 일본에서도 여자 코베기가 많이 시행되었다고 합니다. 아마 서양과 마찬가지로 주로 간통죄의 형벌이 아니었을까 하네요. 

 

 

또, 근세에 이르면 사형을 더욱 잔혹하게 집행하기 위해서 후추처럼 코베기나 귀베기를 통해 피를 철철 흘리게 해서 마치 하늘에 혈제(血祭)를 지내는 것마냥 본보기를 보였다 합니다. 잔인해,,,~

 

 


실제로 『잡병 이야기雑兵物語』에 재밌는 일화가 있는데,  전쟁터에서 주인의 총을 들고 있던 짚신쟁이가 주인의 위기를 돕고 적의 코를 베어서 "나의 공적! 나의 공적!" 해대며 기뻐했는데,,,

 

도려낼때 잘못 도려내서, 수염을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로 전공을 기각 당했다고 합니다...

 

 

물론 정유재란 때는 남녀노소 구별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굳이 인중까지 안잘랐다고도 하는데,,,잘 모르겠네요. 

 

 

그런데,,, 어째서 코무덤이 아니라 귀무덤인건가요?

 

 

옜날엔 원래 코무덤으로 불렸는데요, 코무덤의 이름을 귀무덤으로 바꾼 사람은 일본에 퇴계학을 소개한걸로도 유명한 하야시 라잔(林羅山)이라는 일본의 유학자에요. 

 

엄청나게 유명한 사람이라 아마 교과서에서 한번씩 봤을지도 모르겠네요.

 

 

이 사람이 코무덤을 귀무덤이라고 바꾼 논리가 현대를 사는 우리 입장에서는 살짝 골때리는데요,

 

 

'코무덤은 너무 잔인하니까 귀무덤으로 하는게 좋겠다'

 

 

였어요.

 

?

 

 

네. 귀를 베어가나, 코를 베어가나 현대인 입장에선 똑같이 잔인한데 도대체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고요?

 

 

저도 잘 모르겠네요,, 사실 전근대 사람들의 마인드는 현대를 사는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힘든게 많아요.

 

 

제 추측으로서는 아마도, 하야시 라잔이 헌괵(獻馘)의 예를 참고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까 귀무덤을 괵馘총이라고도 한다 했었죠? 

 

 

헌괵의 괵이 그 괵입니다. 괵괵

 

 

왼쪽 귀를 자르는 헌괵은 전근대 동아시아(중국과 조선)에서 보편적으로 행해지는 의식이었고, 귀 대신 코를 자르는 것은 일본에서만 독특하게 행해졌기 때문에 그 포인트에서 하야시 라잔이 잔인하다는 생각을 한게 아닌가,,, 그런...

 

 

그러니까 놀라는 포인트가 우리하고는 다르죠.

 

 

우리는, "아니 사람의 코를 베었어? 잔인해~ㅜㅜ" 이거인거고,

 

당시 하야시 라잔은 "아니 왼쪽 귀를 베는 게(馘) 아니라 코를 베다니 이건 무슨 야만인 새끼들도 아니고... 걍 귀무덤으로 하자"

 

 

이거인 겁니다.

 

 

이제부터 '헌괵 의식은 도대체 무엇이었는가' 에 대해서 쓰려고 했는데, 으에,,쓰다보니 길어져서 본격적으로 헌괵 의식에 대해 설명하는건 다음 글이 될거 같습니다,,ㅈㅅ,,

 

 

 

다음글에 이어서 쓰도록 하겠습니다.

 

 

다음글: 헌괵, 선노포 의식에 대해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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