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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타뉴 지방의 중심지인 갱강(Guingamp)에서, 툴루즈 근처의 마을에서, 랑그도크 지방에서 오래된 알비 지방에서,  

연주창에 걸렸다고 느끼는 불쌍한 사람들이 

여행 지팡이를 짚고서, 험난하고 때로는 위험하기까지 한 길을 지나서 

그들의 주군이 있는 일 드 프랑스나 루아르 강 계곡에 있는 왕의 성채에 도달했다.

 

아주 오랜 옛날, 일단의 군중들이 남루한 복장을 한 채, 북쪽으로 나아갔다. 그들은 은둔자들, 거지들, 그리고 순례자들이 으레 들고 다니곤 했던 τ 자형 지팡이로 땅을 짚으며 나아가고 있었다. 



여정은 험난했다.  



노상강도들은 비틀거리는 나약한 먹잇감인 그들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고, 고된 여정으로 인한 여독은 일행 중 약한 사람들의 목숨부터 앗아가기 시작했을 것이다.  



옛 로마의 훌륭한 도로들은 거의 사라지거나 황폐화되어, 그 터라도 어렴풋이 남아있다면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발이 푹푹 빠지는 진창을 견뎌내야 했으니까.



더욱이 여행자들은 우회로를 택해야했다. 곳곳에 강탈기사들의 성채가 있었기 때문었는데 강탈기사들은 여행자들의 재물뿐만 아니라 목숨 또한 강탈하곤 했다.  



여행자들은 산채로 매달려 불에 훈제되기도 하였고, 머리에 밧줄이 묶여 두개골이 부숴지기도 하였으며, 지하감옥에 던져져 독사의 먹잇감이 되기도 하였다. 



마침내, 여행자들은 수도 근처의 관문에 도달했다. 그들은 이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서 통행료를 지불해야만 했다. 그래도 이제부턴 강도들에게 목숨을 잃을 걱정은 덜게 되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어딜 향해 가는 것이며, 무엇을 위해 그 험난한 여정을 견뎌내야만 했던 것일까?

 

 

 

“왕이 너를 만지고, 신이 너를 치료하노라."

 

프랑스의 왕은 목이 울퉁불퉁하게 부은 떠돌이 행색의 무리를 향해 다가갔다. 



살면서 처음으로 그들의 임금을 눈앞에서 보게 된 환자들은 자신들의 병이 곧 치유될 것이라는 희망을 잔뜩 품고 있었다. 



그 희망은 곧, 일천년전 지금의 프랑스 왕과 같이 랭스에서 비둘기 모습을 한 성령으로부터 직접 세례를 받은 클로비스 대제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것인 동시에, 성 베드로 성당에서 교황으로부터 직접 대관을 받은 샤를마뉴에 그 기원을 두는 것이었으며, 더욱이 오래전부터 퍼져있는 연주창 환자들의 집단적 경험에 의거한 것이었다. 



예로부터 연주창 환자들 사이에서는 ‘수도로 가서, 왕의 어루만짐을 받으면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믿음이 퍼져 있었다.(물론 어느 시대에나 그렇듯, 냉소적인 사람들도 있었다)



전임자들과 같이, 랭스에서 성스러운 향유(香油)로 기름부음을 받은 프랑스의 왕은 차마 황송스러웠기에 그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는 이 가련한 연주창 환자들을 똑바로 보았다.



그 착한 심성의 어린 군주 또한 자신의 혈통 속에 병자들을 치유할 수 있는 기적이 깃들어 있다고 믿고있었기 때문에, 한시라도 이 병자들을 구원하고 싶어 했다. 그것은 군주 자신이 천국으로 한발짝 더 다가갈 수 있게 하는 것이기도 했다.



상태가 심한 환자의 환부에서는 고름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왕은 환자들의 환부를 일일이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왕이 너를 만지고, 신이 너를 치료하노라.” 왕은 성호를 그으며 이렇게 말했다.



환자들은 군주의 옥음(玉音)을 처음 들어보았다. 젊은 환자들의 눈은 희망으로 반짝거렸다. 



하지만, 조금 나이 들어 보이는 어느 환자는, 그의 쾌유를 바라는 젊은 군주의 목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 무의식중에 시선을 궁중 자선담당관으로 옮겼다. 

손대기 치료가 끝난 그는 곧 자선담당관으로부터 소정의 자선금을 받게 될 것이다.

 

 

 

 

 

 

 

 

참고문헌:

기적을 행하는 왕, 마르크 블로크, 박용진(옮긴이), 한길사

서양중세문명, 자크 르 고프, 유희수,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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