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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인 어비스의 심계4층 거인의 술잔

 

 

The Titan's Goblet / T. Cole / 1833

 

 

미국 낭만주의 풍경화가 토머스 콜(Thomas Cole)의 그림.

 

 

 

이 사람은 오하이오에서 벽지 공장 운영하는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고,

 

워즈워스, 콜리지, 바이런, 키츠와 같은 낭만주의자들에 깊은 영향을 받았음.

 

이외에도 그는 유명한 낭만주의 소설가, 워싱턴 어빙의 격언을 받아들여, 자연을 묘사하기 위해선 '자신'이 직접 그 속에 들어가야한다는 신념을 가지게 되었음.

 

그는 자란 곳은 미국이었지만 태어나기는 영국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영국의 산업도시 랭커셔에서 보냈기때문에, 신대륙의 장엄한 날것 그대로의 자연환경에 완전히 압도되었고, 

 

본인의 그림에서도 그 웅장함을 표현하고자 노력하였음.

 

 

 

이는 비단 콜에만 국한된 일은 아니었음.

 

낭만주의는 분명 19세기 초의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의 폐해를 자양분삼아 자라난 사조였기에. 

 

당시 사람들은 과학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인한 여러가지 진보의 증거들을 보며 낭만적 기대감을 품었지만, 

 

동시에 그러한 발전으로 인해 자연환경(고향풍경)이 개작살이 나는 것도 처음으로 직관하며 실시간으로 인간 개개인의 무력함과 산업화라는 것의 막강함에 충격받고 있었고, 

 

이는 19세기 사람들이 개개인의 내면, 그리고 목가적인 삶과 인간에 의해 오염되지 않은 자연환경에 대한 이상을 품도록 하였음. 

 

 

바야흐로 '그림'같은 것과 '자연'스러운 것이 곧 아름다운 것이 되는 세상이 되었음.

 

 

Kaaterskill Falls, 1826

 

 

 

암튼 그렇게 1825년, 콜은 그림 그리기 위한 여정을 떠나 허드슨 강 유역에 도착했고, 

 

그가 화폭에 담은 캐터스킬 폭포의 풍경은 이후 그를 허드슨 강 학파 시조이자, 

 

미국을 대표하는 풍경화가의 자리에 올려놓게 됨.

 

From the Top of Kaaterskill Falls, 1826

 

 

 

 

+콜의 영향을 받은 허드슨 강 학파의 그림들

 

Frederic Edwin Church, Niagara Falls, 1857

 

 

Albert Bierstadt, Among the Sierra Nevada, California, 1868

 

 

 

 

 

콜은 그러나 현실의 풍경만을 그리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현실에 없는 것을 그리기 시작했음.

 

왜그랬을까?

 

나는 미술사를 하나도 모르기때문에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신의 시선을 그리던 시대'에서 '내가 내면에서 느끼는 감정으로 본 현실의 풍경을 그리는 시대'로 바뀌어서, 어느덧 풍경화를 잔뜩 그리는 시대가 되었고,

 

그런 시대에서 콜도 본인의 풍경화 몇번 그리면서 내면을 바라봤는데,

 

막상 몇번 그려보니까 이제 슬슬 자신이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는 대충 파악한 거 같아져서,

 

약간 현실 세상 좀 노잼인거 같아서 아예 세상을 바꿔서 그려보고 싶었던 게 아닐까?

 

 

The Present(현재), 1838

 

 

The Past(과거), 1838

 

 

 

 

그의 우화적인 회화들은 특히 서구 문명의 역사를 모티브로 한 어느 제국의 흥망성쇠를 다룬 '제국의 행로'와 인간의 삶을 네 부분으로 나눠 그린 '인생의 여정' 연작에서 전성기 폼을 보여줌. 

 

 

 

 

 

제국의 행로

 

 

 

The Savage State. Oil on canvas, 1834

 

The Arcadian or Pastoral State, 1834

 

 

Desolation, 1836

 

 

 

 

결국 남은 것은 황량한 폐허뿐...

 

 

근데 현실에선?

 

The Notch of the White Mountains (1839)

 

 

오늘날

 

 

 

아스팔트의 승리다

 

 

 

+ 메인어에 깔려있는 등장인물들의 약간 광기어린 모험예찬적인 모습도 전형적인 19세기초 낭만주의적인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임.

 

분명 어비스는 개무섭고 무언가 뒤틀린 곳이며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지만, 자연이기 때문에, 아직 탐사되지 않은 오지인 자연은 곧 한낱 인간의 이성이 끝나는 지점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자연의 일부인 인간은 진정한 고향에서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어빙의 말마따나 자연으로 가야함.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죽을 위기가 넘쳐나는 어비스 아래로 내려간다는 건 미친 짓임. 근데 미개척지 탐사, 즉 인류 이성의 승리를 위해서는 반드시 누군가는 어비스 아래로 내려가서 관찰하고 측량하는 과학자의 역할을 수행해야하는 아이러니가 있음.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올라야하는 것처럼, 어비스 또한 거기에 있기에 그 아래로 내려가야만한다면, 어비스 탐험대는 곧 본인 당사자들은 낭만주의 정신의 사도들이요, 낭만주의자들뿐 아니라 인류 이성의 진보를 믿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격려를 받게 됨. 그래서 이 시대에는 탐험가가 그렇게 엄청난 부와 명예를 누렸던 것이고, 영국인들이 (현대적 관점에서보면) 남극점 경쟁에서 패한 채 비참하게 죽은 로버트 스콧을 과학의 순교자로 기렸던 것임.

 

낭만주의 시대의 어른들이 공장의 매연으로 가려진 유년기의 목가적 풍경을 추억하며 숲으로 들어갔듯, 리코또한 잃어버린 어머니를 찾으러 어비스로 내려가는 걸 보면 자연의 가장 잔인하고 가혹한 부분을 누릴 자격은 오직 순수한 동경만을 품은 어린아이들에게만 있는 것 같음. 그래서 메이드 인 어비스의 주인공들이 어린아이인게 아닐까?

 

'제국의 행로'에서처럼 어비스도 주기성을 가지고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움직이는데, 이는 당시 낭만주의자들이 사회를 유기체, 나아가서 인간처럼 바라보던 관점을 반영한 것임. 인간은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기 위해 자연과 하나가 되고, 자연은 곧 인간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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